전시

수원시립미술관 올리비에 드브레:마인드 스케이프 전

myview241107 2024. 11. 7. 23:43

24년 10월 19일 올리비에 드브레 작품이 전시된 수원미술관을 찾았다.

sns에서 전시를 알려주고 홍보하는 한 계정을 통해 알게 된 작가였으나 색감의 조화가 참 인상적이어서 꼭 가고 싶다 생각했었다. 이 바로 옆에는 개인적으로 자주 지나다닐 일이 있었고 전통행사도 봤던 화성행궁이 있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알던 곳이라 미술관이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되어 놀랐다. 그리고 이 전시의 작가에게 큰 영향을 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랑스 서부 지역 투르(Tours)에 있는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CCC OD)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이 있는 수원시립미술관의 자매결연으로 성사된 전시인 듯하다.

도슨트 시작 전 간단히 안 쪽을 둘러보았는데, 드브레가 원래 건축을 전공해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실을 다녔다는 글을 보고 놀랐고 굉장히 흥미가 일었다. 알고 보니 가족 모두가 정치, 의료, 예술 등에 이름이 있는 명문가 집안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1부 공간의 '만남, 추상으로'라는 제목으로 이름 지어져 있었는데 해설가 분께서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인생이 바뀌는 경험이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으로 입을 여셨다.

<풀밭 위의 소녀> (1940)

9살에 어머니를 잃은 드브레는 그림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던 듯하다. 잠깐의 건축 이력 후에 화가로 전환한 그는 1941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풀밭 위의 소녀>(1940)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구상과 추상이 섞여있는 이 그림을 보고 피카소가 그를 만나보고 싶어 하며 "너의 그림은 어른의 그림이다. 추상화를 하면 어떤가"라는 제안과 만남으로 그의 작품은 추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0년대 중반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에 대한 잔혹성과 유대인 학살에 대한 공포와 충격 등을 작품에 담으며 점점 추상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그만큼 고통을 표현한 작품의 인기는 많지 않은 중에서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나온 새로운 추상의 양상이 1950년대 사각 형태의 두꺼운 붓 터치를 수직으로 배열한 <기호 인물> 연작. 여러 시도와 연구 후 본인의 스타일을 정립하기 시작하며 '결국엔 모든 건 내 손에서 나오는구나.' 선과 제스처 중요성을 깨달으며 최소한의 선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내 사인(=제스처)이다'라는 답을 내놓게 된다.
이후 미국에서 처음 개인전을 하게 되는데,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나치의 핍박 때문에 미국으로 여러 예술가가 이주하게 되며 여러 사조가 유행하는 상황에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과 마주하게 된다. 이로 인해서 선을 중시하던 드브레의 회화적 행위와 색채의 범위가 확대됐다.

루아르의 방

로스코는 마음에 대해 그렸으나 드브레는 실제 풍경을 기반한 추상화를 그리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색채로 녹여낸다. 로스코는 스며들게 표현하지만 오브레는 레이어로 쌓아 표현한다. 이와 관련해 도슨트 설명 중 해설가 분께서 이 작품이 도착하고 포장을 뜯을 때 물감이 묻어나오는 것을 보면서, '좋은 물감은 100년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다더니 정말 그렇구나.'라고 생각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이것을 듣고 비단 그림 뿐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은 세대를 뛰어넘어 보는 관람자의 감정에서 계속 마르지 않고 만들어졌던 그 당시 그대로 존재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드브레는 1980년대에 새로운 풍경과 빛을 발견하기 위해 세계여러지역을 여행했고 그에게 가장 큰 감명을 준 곳은 프랑스 투르(Tours)지역의 루아르 강변이었던 것처럼 흐르는 것은 멈추지 않고 생동함으로서 의미가 있다. 위가 대표적으로 루아르 강의 풍경을 여러 날씨, 계절, 시간에 따라 다르게 포착한 작품들이다. 특히 2부 공간의 메인이라고 볼 수 있을 '루아르의 방'은 드브레가 직접 만든 캔버스의 xyz축이 전체적으로 균형이 완벽하지 않아 거대한 캔버스가 벽에 붙으면 대각선으로 떨어지게 될 것을 염려해 매달아 테두리에 조명을 비추며 전시하게 되었다는데, 캔버스가 투명해지며 레이어층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어 실제로 보면 더욱 환상적이고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길고 푸른 선들(스봐뇌위, 노르웨이)’(1974)

레이어로 인해 뭉치는 표현과 색감을 자세히 보는 일도 즐거웠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들은 위의 그림들. 노르웨이 배경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많았다. 미술관으로 이동하며 들은 노래가 있는데, 보자마자 떠오른 노래가 두 곡 있었다.  데이먼스 이어의 '죽지 않은 연인에게'와 'Yours'. 특히 '죽지 않은 연인에게'를 들으면서 <길고 푸른 선들>(1974)를 하염없이 감상하고 싶었다. 그러나 보관함에 이어폰을 두고 와 실패.

드브레의 다양한 스케치 연구

얼핏 전시 소개를 접했을 때도 색채가 정말 아름답고 미적이다라는 감상을 받았었는데, 드브레의 배경을 알고나니 여러 시도와 건축학적 지식의 연구로 이루어진 시간의 엄청난 결과물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그의 아들의 말로는 그는 언제나 그림을 그렸고 운전을 하면서도 사고가 실제로 날 뻔도 했다고 한다. 붓을 밀대처럼 만들어 자동차의 본네트에 물감을 뿌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을 하고 말을 걸어도 본인이 표현하려는 것에 집중해 신경쓰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목표에 대한 집중과 열정이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2층의 벽은 드브레가 여행한 장소에 따라 다른 색으로 나뉜 벽에 각각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드브레는 1970년대 일본 개인전을 하고 80년대 개인 소장자들의 요청으로 한국으로 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하나는 국현미로 갔을 것으로 드브레의 아들이 추정하나 나머지는 개인 소장자이기때문에 어떤 그림인지조차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이 그림들은 어떤 그림들일지 매우 궁금하고 언젠가 밖에 나와 눈을 마주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올리비에 드브레라는 작가 자체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의의 때문인지 그가 살던 곳과 아들의 인터뷰를 포함한 영상이 있었는데, 투르 지방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고 한번쯤 실제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들의 "예술창작은 그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과정이었는데 때로는 냄새마저 전달하고 싶어했다"라는 말이 한 장소나 물건에 대한 애착과 인간으로서 느끼는 포착, 휘발되는 순간의 감정에 대한 미련, 추억 등을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느껴져서 그를 유명한 예술가가 아니라 친근한 한 인간으로 느끼게 해줬다.

정말 만족스러운 전시였고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감정의 시선이 좋았다. 드브레는 평면적 요소에서 벗어나 조각이나 공연과의 협업의 작품도 남겼는데, 건축학적 지식을 가진 전공자로서 무대에 대해 토론하고 인간보다 몇십배는 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업복을 입고 대용량의 페인트, 사다리 등을 이용하는 그를 보고있자니 모든 인간은 미시적으로 보면 노동자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가 목표를 보고 다른 것에는 연연하지 않는 마음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올리비아 드브레 전시를 위한 설명영상

개인적으로 파란색을 좋아하는데 올리비아 드브레 작가도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말한 기록이 있어서 '그래서 친근하고 마음이 잘 통한다고 느껴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에 드브레가 어릴 때부터 파란색/분홍색 이분법적 색깔 나누기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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